1980∼90년대 `명동성당 담당` 정보형사 한영실씨
뇌경색으로 쓰러졌다 꿈에 추기경 보고 재기 `기적`
지난해 2월 평생 사랑과 나눔을 설파하다 선종한 고(故) 김수환 추기경의 빈소가 꾸려진 명동성당.
선종 소식을 듣고 한 노년 남성이 장애인 콜택시를 타고 빈소 근처를 찾아 안타까운 표정으로 하염없이 성당을 바라봤다.
정보 형사로 만남을 시작했지만, 이후에는 선행의 동반자로 20여년간 김 추기경과 각별한 인연을 맺어온 퇴직 경찰관 한영실(69)씨였다.
그는 1983년부터 1998년까지 서울 중부경찰서에서 명동성당 담당 정보관으로 근무했다.
굵직한 시국사건과 대규모 민주화 시위 때 성당에서 살다시피 하며 1987년 박종철 열사의 죽음, 6ㆍ10 민주항쟁 등 역사적인 순간마다 김 추기경 곁에 있었다.
경찰이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한씨를 명동성당 담당으로 배치하면서 추기경과 인연은 시작됐고, 김 추기경은 그를 '한 형사' 대신에 세례명 '한 프란치스코'로 부르곤 했다.
1998년 퇴직한 그는 김 추기경의 권유로 천주교 산하 봉사단체 '작은 예수회'에 몸담았고, 남북한장애인걷기운동본부 일을 맡아 장애인에게 휠체어를 나눠주는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.
새 삶을 살던 그에게 시련이 닥친 건 2005년 11월 말. 이듬해 열릴 장애인의 날 행사를 준비하던 중 갑자기 뇌경색으로 쓰러진 것이다.
청천벽력같은 일을 당하기 얼마 전 그는 혜화동 주교관에서 김 추기경을 만나 "장애인의 날 행사 때 꼭 오셔야 한다"고 청했다. 6년 전인 이때의 만남이 본의 아니게 김 추기경과의 마지막 자리가 됐다.
신체 오른쪽이 마비된 한씨에게 주치의는 "신경 마비로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"이라고 했다. 그는 지난 5년간 침대에서만 지내면서 끼니와 용변을 침대에서 누운 채 해결했다.
그런 그에게 지난해 8월 '기적'이라 불릴 만한 일이 일어났다. 다리를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다.
7일 연합뉴스와 만난 한씨는 "꿈속에 추기경님이 나타나셔서 '걸어라. 걸을 수 있다. 걸어서 일하라'고 말씀하셨는데 신기하게도 다음날 아침 침대를 잡고 일어설 수 있었다"며 "딸에게 바로 전화를 했는데 '다리가 들린다'는 말을 믿지 않았다"고 말했다.
의사조차 그에게 "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났다"고 말하며 놀라워했다. 한씨가 지팡이에 의지해 느릿느릿 걸을 수 있는 건 그야말로 기적이었다.
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남북한장애인걷기운동본부를 찾아 다시 일을 시작했다. 작년 11월부터는 여러 성당을 돌며 후원회원을 모집하기 시작했는데 벌써 150여명이 가입을 했다.
한씨는 "세상은 참 돌고 도는 것 같다"며 "예전에는 신부님들이 나에게 시위하는 학생들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는데 요즘은 내가 신부님들한테 후원회원을 모아 달라고 부탁한다"고 말하며 웃었다.
그는 "선종하신 추기경께서 내가 다시 일할 수 있게 세워주신 것으로 생각한다. 돌아가시고 나서도 나를 통해 계속 일하시는 셈"이라며 "추기경께서 맡기신 일이니 목숨을 다하는 날까지 해내야겠다고 다짐했다"고 말했다.
한씨는 "지금은 찬 바람에 몸이 아직 굳어 있지만 날이 풀려서 따뜻해지면 추기경 묘소에도 한번 가보고 싶다"고 작은 바람을 전했다. (연합뉴스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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